1938년 제작된 영화 <가스등(Gaslight)>에서 주인공 폴라는 자신의 정신질환이 심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방금 전 사용한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을 책망하며 깊은 실의에 빠진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자신에게 남겨진 거액의 유산을 노린남편의 치밀한 계획이었음이 밝혀지는데….
심리 서스펜스 장르에서 지금도 유명한 이 영화는 훗날 심리학자인 로빈 스턴(Robin Stern)에 의해 재조명된다. 그는 자신의 저서<가스등 효과(Gaslight Effect)>에서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인 조건에서 상대방을 조종해 피해를 가하는 병리적 심리 현상을 ‘가스등효과’라 설명했다.
가스라이팅 가해자는 거짓말과 함께 사실에 대한 부정과 모순적 표현 혹은 비난 등을 함으로써 피해자로 하여금 자신의 판단력을 의심하게 만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더욱 크게 의존하게 되며, 가해자는 이러한 상황을 이용해 타인의 행동을 통제하고 지배하게 된다.
가스라이팅은 가족이나 연인 등 친밀한 관계에서 많이 나타난다. 가스라이팅을 겪은 피해자는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빠지기 쉬우며 사회적 관계망에서도 스스로 고립되는 경우가 많다. 지속적인 가스라이팅은 피해자로 하여금 감정·판단·인지·상상 등 모든 면에서 자신을 불신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심각한 정서적 학대를 당한다고 볼 수 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심리지배’라는 용어로 ‘가스라이팅’을 대체하고 있다.
몇 해 전 유명 연예인들의 극단적 선택이 잇따르면서 세상이 떠들썩했던 적이 있다. 저명한 사람들의 불행이 미디어를 타고 대중에게 전파될 때 부작용으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모방’과 ‘확대 재생산’이다. 유명인의 극단적 선택에 대해 미디어는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필요 이상 자세하게 보도하거나 죽음을 둘러싼 배경에 대해 지나치게 과장하고 억측을 펼치기도 한다. 이러한 미디어를 접한 대중들 사이에선 음모론이 여기저기서 재생산되고, 심지어 극단적 선택을 따라 하는 경우마저 발생하기도 한다.
이렇듯 특정 사실이 미디어를 통해 이슈화되면서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부적정인 결과가 확산되는 모습을 ‘루핑현상’이라 말한다. 루핑현상은 캐나다의 미디어 전문가 이언 해킹(Ian Haking) 교수가 자신의 저서 <만들어진 사람들(Making Up People)>을 통해 처음 썼다. 해킹 교수는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은 당대의 젊은이들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은 ‘소설’이라는 매체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소설’은 오늘날 ‘미디어’가 그 역할을 대체함으로써 대중에게 ‘베르테르효과’를 전파하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언론이 현실을 보도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언론이 보도한 현실이 얘기치 못한 또 다른 현실을 만들어 내는 요즘, 언론의 책임의식과 신중한 보도 태도가 절실히 요구된다.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코끼리 상아로 자신이 좋아하는 여성을 실물 크기로 조각해 사랑에 빠진다. 그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감동한 아프로디테는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피그말리온이 결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오늘날 피그말리온효과는 타인의 기대나 관심이 더해져 능률이 오르고 좋은 결과가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
피그말리온효과를 처음 인용한 사람은 하버드대의 심리학자인 로버트 로젠탈(Robert Rosenthal)이다. 그는 1968년 샌프란시스코의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상대로 지능검사를 한 후 검사 결과와 상관없이 무작위로 상위 20%를 추려냈다. 로젠탈 교수는 이 학생들에게 ‘지적 능력이 우수하고 학업성취도가 높은 학생들’이라 칭찬하고 학생들로 하여금 이 사실을 믿게 했다.
그로부터 8개월이 지나고 다시 지능검사를 했더니 무작위로 추려낸 가짜 상위그룹 학생들의 평균 점수가 놀랍게도 매우 높게 나타난 것은 물론 그동안의 학교 성적 또한 크게 향상돼 있었다. 로젠탈은 학생들에게 거는 주변의 기대가 실제로 성적 향상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명단에 오른 학생들에 대한 교사의 기대와 격려가 학생들의 성장에 매우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었다.
이와 반대되는 효과로 한 번 부정적인 낙인이 찍히면 실제로 그 대상이 점점 더 나쁜 행태를 보이게 되는 경우를 의미하는 ‘스티그마 효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