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문화 지킴이

풀잎의 떨림으로 그리움을 연주하다
오세철 풀피리 보유자(경기도 무형문화재 제38호)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한강 둔치를 자주 산책했다. 어린이에게 길가에 핀 꽃과 풀잎은 재미난 장난감이다. 민들레 씨를 불어 날리기도 하고, 토끼풀 줄기로 반지를 엮기도 했다. 그중 가장 신나는 놀이는 강아지풀잎을 입술에 대고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경기무형문화재 제38호 풀피리 보유자 오세철 선생을 만나러 가는 내내, 머릿속에 추억이 방울방울 맺혔다. 풀피리는 우리에게 악기 그 이상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했다.

깊은 역사를 가진 악기

풀피리는 말 그대로 풀잎을 불어 소리를 내는 악기다. 가공하지 않은 풀잎과 입으로만 곡을 연주한다. 그러니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음계가 탄생한다. 천연의 멜로디를 내는 풀피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은 역사를 가진 악기다.
“풀피리는 생각보다 역사가 깊은 악기예요. 「조선왕조실록」 등 역사 서적에 초적(草笛) 혹은 초금(草笒)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돼 있어요. 특히 연산군과 중종 때는 궁중에 풀피리 악사를 두었다고 문헌에 나와요.”
실제로 풀피리에 관해 역사적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수서」‘동이전’에 기록된 갈대피리나 갈잎피리가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풀피리 역사다. 고려 시대 문인 이규보의 시에도 풀피리가 등장한다. 조선 시대에는 「악학궤범」과 「조선왕조실록」에 정식 악기로 소개되기도 했다.
“특히 영조 때는 궁중의 진연에서 풀피리 연주를 했어요. 진연에 섰던 세 개의 악기 중 하나로 초적이 쓰여 있죠. 그 기록에 의하면 초적 연주자는 강상문이라는 분이에요. 아주 다양한 역사 문헌에서 풀피리의 흔적을 찾을 수 있어요.”

시작, 시련 그리고 노력

오세철 선생이 풀피리를 마주한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중학생 시절 친척 집에 가는 길에 들려온 풀피리 소리에 운명처럼 이끌린 것. 그때부터 시작된 풀피리와의 인연이 지금에 이르렀다.
“중학교 1학년 때 친척 집에 가다가 풀피리 연주 소리를 듣게 됐어요.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했어요. 국악기 소리를 잘 알고 있었죠. 그런데 어디선가 이건 피리도 아니고, 대금도 아니고, 기가 막힌 소리가 나는 거예요. 그래서 가봤더니 나이 지긋하신 분이 아카시아 잎으로 연주하시는데, 그때 완전히 매료돼 버렸어요.”
풀피리에 입문한 이후 오세철 선생은 피나는 노력으로 차근차근 실력을 쌓았다. 하지만 오세철 선생에게도 시련의 계절이 찾아왔다. 가장 큰 시련은 풀피리 스승인 전금산 선생이 세상을 떠난 일이었다. 오세철 선생이 아직 학생이던 시절이었다. 그는 어떻게 시련을 극복했을까. 오세철 선생은 시련을 이겨낸 방법으로 단 하나의 단어를 제시했다. ‘노력’이었다.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한동안은 혼이 나간 사람처럼 살았어요. 눈앞이 캄캄했죠. 어린 학생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니 가족들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아픔을 이겨내는 길은 하나밖에 없더라고요. 매일같이 동네 뒷산에 올라 풀피리를 연습했어요. 언젠가는 독성이 있는 풀잎으로 연습하다가 기절한 일까지 있었죠. 그렇게 노력으로 시련을 이겨냈어요.”

정서를 담은 소리

오세철 선생은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고, 지금은 경기도 포천시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남한과 북한의 경계선 근처에서 나고 자랐으며,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북한에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의 정서를 잘 이해한다. 오세철 선생이 작곡한 ‘한탄강 아리랑’은 휴전선 너머에 묻은 그리움과 슬픔이 잘 묻어나 있다.
“저는 6·25전쟁 후에 태어나서 그 과정은 잘 몰라요. 그런데 휴전선 근처에 사니까, 실향민 이야기를 많이 접할 수 있었어요. 얼마나 고향에 가고 싶겠어요. 그런 정서를 생각하며 악보를 썼어요. 그래서 한탄강 아리랑에는 강원도 지역의 소리인 메나리 가락에 치중하면서도 북한의 평안도가 속한 서도 지방의 강한 음색을 접목했죠.”
오세철 선생은 인터뷰를 마친 뒤 한탄강 화적연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한탄강 아리랑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북한에서 발원해 내려오는 강줄기와 그리움의 음계가 어느새 조화를 이뤘다. 때마침 하얀 새가 오세철 선생 등 뒤로 날아올랐다. 그 순간 슬픈 역사를 모두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천연 악기의 내일

마지막으로 오세철 선생은 이 말을 꼭 남기고 싶다고 했다. 아름다운 풀피리 소리가 미래에도 계속 울리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메시지다. 현재는 오세철 선생의 딸을 포함해 전국에 10명 남짓한 사람이 풀피리의 명맥을 잇고 있다.
“소리를 들어보셔서 알겠지만, 정말 매력적인 악기예요. 풀피리를 많이 알려서 명맥이 끊기지 않도록 경기도민분들과 지방정부에서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좋겠어요.”

 

영상 링크 : 아름다운 풀피리 소리를 들어볼까요?

오세철 선생의 풀피리 연주에 맞춰 소리하는 전수자 윤숙병 씨(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와 박명숙·박향숙 씨